문화.영화

오페레타 "박쥐"

aozora 2014. 12. 12. 21:37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남긴 작품 '박쥐'는 오페라와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준다.
'박쥐'는 화려한 음악, 신나는 왈츠와 폴카, 재미있는 상황과 재치 넘치는 대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역사상 최고의 오페레타로 꼽힌다.

피 끓는 청춘에 모든 걸 버리고 입대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 군입대를 20세부터 하지 말고, 만 60세부터 시키자 이거야! 얼마나 좋아.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되지. 뺏길 애인이 있나, 새벽잠 없으니까 불침번 잘 서지!”

  국립오페레단의 오페레타 ‘박쥐’ 3막에서 연기파 배우 성지루(프로쉬 역)는 술에 취한 채 이렇게 중얼거리며 객석에 웃음을 던졌다.

  ‘작은 오페라’라는 뜻의 ‘오페레타’는 오페라보다 쉽고 가벼운 희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박쥐’는 역사상 최고의 오페레타로 꼽히는 걸작.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이자 ‘박쥐’ 전문 흥행메이커로 유명한 영국 출신 스티븐 로리스가 연출을 맡아 ‘쉴 틈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군데군데 코믹한 한국어 대사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아프다던 이모님은 홍대 클럽에 줄 서” 있고, “애 하나 낳을 때마다 로또 번호 하나씩 알려주면 1등 하려고 6명 낳겠지” 이런 식이다.

또한 이 작품은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답게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 귀를 즐겁게 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잘 알려져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남긴 아름다운 춤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이 작품에 응축돼 있다고 하더니, 과연 공연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흥겨운 왈츠 선율에 몸을 싣게 된다.

2막의 무대는 향락의 절정을 상징하는 ‘카바레’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플레이보이의 바니걸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은쥐발레단은 섹시한 가터벨트를 한 채 채찍 같은 꼬리를 달고 춤을 춘다. 무대 중앙에는 거대한 샴페인병이 보이고, 남자들은 바지를 벗어던진다.

그 카바레의 주인인 러시아 왕자 오를로프스키는 “내 집에서 누군가가 지루해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 사람을 거리낌 없이 싸서 문 밖으로 던져버리지. (중략)누구나 나만큼 마시지 않으면 나는 몹시 화가 나지”라며 노래한다.

특히 오를로프스키 역의 카운터테너 이동규는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연기력과 고음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한국인 카운터테너로는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세계 초연 현대오페라 ‘CO2‘로 데뷔 무대를 가질 예정인 그는 세계 유수 지휘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주인공. 과장되고 제멋대로인 오를로프스키 역은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기도 하는데, 이번 이동규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훌륭했다.

하지만 성악가들이 코믹한 연기를 펼쳐보이며 무대 위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 탓인지, 어떤 부분에서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2막 카바레에 놓여진 화환이 다소 이질적인 무대디자인적 요소처럼 느껴졌다.

“와인을 마셔서 잊어버리고 위안을 받아요. 변할 수 없는 것을 잊는 사람은 행복해요”라는 알프레도의 노래에서 왜 이 오페라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매번 공연되는지 알 수 있었다.

묵은해의 고민을 떨어버리고 한바탕 크게 웃으며 새해를 맞이하는데 이보다 좋은 작품이 없다.